[마음이 열린 자리] 여는 글 -
흰 아침, 산이 전하는 말
저지난 가을녘일까요.
흰 아침,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나 사립을 나서 서천西天에 걸린 달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 아래 엎드려 있을 산이 생각납디다.
전날 낮에 그 기슭의 백숙집에 갔다가 붉어가는 그 산을 마음에 담아왔거든요.
그래 무작정 집을 나서 그 산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흰 아침마다의 백련산행이 한 해 반, 햇수로는 삼 년째입니다. 서울을 떠나 있거나 몹시 앓거나 일기가 아주 험악하거나 하는 때만 빼고는 아침마다 백련산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몸만 산에 들었지 딴 생각에 붙들려 정작 산은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반 년이나 지나서야 생각이 삭아지고 산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진정으로 산을 만나 느끼고 부비고 만져가며 말을 걸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지성으로 말을 건 지 석달 만에 산은 오래 품어온 숲의 얘기, 깊이 지켜본 세상 얘기를 하나씩 꺼내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산이 전하는 말을 받아적었을 뿐이지요. 그렇게 받아적은 말이 여덟 달 동안 백여 편인데, 미처 받아적지 못한 말도 적잖습니다.
일찍이 "생각이 끊긴 자리에 마음이 열린다"는 간화선을 주워듣고 보시바라밀의 경지를 우러렀으되 거듭 말의 질곡에 빠져 끝내 헤어나지 못하니, 저 같은 중생이 "깨침"을 함부로 입에 담을 바는 아니겠지요.
예수의 "사랑"을 쉽게 입에 담되 그것을 행하지 못해 끝내 그 참뜻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여기 산이 전하는 말은, 마음의 그림자나마 붙드는 실마리라도 될까 싶어 감히 책으로 엮어내니 용서와 격려를 바랍니다.
2018.03.15 저녁 200번 버스에서
이수가 쓴 글을 16일 아침에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