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3:15 (일)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 로이 배(총괄 편집차장)
  • 2023.0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은 작년 2022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결과를 엮어 천호동, 동남부 교통의 관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고 오늘 11일(화) 밝혔다.

지난 2007년부터 진행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조사 연구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였던 「보광동」을 시작으로 이번 「천호동」까지 총 39개 지역 조사를 완료하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천호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며 공간과 지역의 위상 변화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으로서 천호동이 지닌 정체성을 바탕으로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구분해 지역의 발전과 변화를 면밀하게 정리하였다.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광나루(광진)와 광진교

경강(京江)의 첫 번째 나루, 광진(廣津)

광진은 고려시대에 양진(楊津)이라 불리는 나루였으나, 조선 초기부터 ‘경기도 광주로 가는 배가 드나드는 나루’라 하여 광진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광진은 임금의 능행길에서 한강을 건너기 위해 꼭 필요한 나루였다. 선릉․정릉․장릉에 행차할 때는 노량진의 배다리를 이용하고, 헌릉․영릉(英陵, 세종)․영릉(寧陵, 효종)에 행차할 때는 광진에서 배다리를 건넜다.

경강(한강)의 시작점에 있던 나루인 광진(廣津)은 동쪽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으로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물산이 교류하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경강의 나루에는 전국에서 거두는 세곡(稅穀)을 비롯하여 서울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인 미곡(米穀, 쌀)․어염(魚鹽, 생선과 소금)․시목(柴木, 땔나무)․건축용 목재 등이 모여들었다. 광진은 그중에서도 특히 목재의 집산지로 유명하였다.

서울 도심과 강동 지역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던 광진교

지난 1920년대 광진에서는 발동기선 한 척으로 나룻배를 끌어 우마차나 자동차를 건네주었다. 지난 1930년대는 도강하는 자동차․우마차․손수레 등이 매일 수백 대에 달해 나룻배로는 격증한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여름에 홍수가 나면 수일 동안 교통이 두절돼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강원․충청․경상도에 속한 10여 군의 유지들이 연합 해 광진교 가설운동을 벌였다. 한강대교에 이은 서울의 2번째 인도교인 광진교는 지난 1934년 9월 20일에 공사가 착수해 지난 1936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지난 1976년에 천호대교가 준공되기 전까지 광진교는 서울의 도심과 강동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관문이었다. 천호대교와 함께 건설된 천호대로는 동부간선도로와 교차하고, 상일 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지금도 천호동이 서울 동남부 교통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성동구에서 강남구로, 지금은 강동구가 된 천호동

천호동의 옛 이름은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九川面) 곡교리(曲橋里)

일제강점기 천호동 일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구천면 곡교리라 불렸다. 곡교리는 마을 앞에 굽은 다리가 있다고 해 붙은 명칭이다. 현재 강동구 천호동과 명일동의 경계를 지나는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으로 그 명칭의 흔적이 남아있다.

6·25전쟁 피란민이 만든 새 동네 천호동

곡교리에는 청송 심씨․광주 이씨․함종 어씨 등이 집성촌이 이루고 벽동말(碧桐村), 당말(堂村), 고분다리말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

6·25전쟁 이후 서울의 동쪽 또는 북쪽 지역에서 온 피란민과 지방 상경민들은 한강을 경계에 두고 대거 천호동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토박이들이 살던 기존 마을에 흡수되지 못하고, 천호 구사거리 일대에 터전을 이루며 새롭게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천호동이 되었다.

1963년 서울시 편입과 강동구 천호동의 탄생

해방 이후 서울 시역(市域)의 확장으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는 지난 1963년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돼 천호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지난 1975년에 성동구의 강남 지역이 강남구로 분구되며 강남구가 되었고, 지난 1979년에 강동구가 승격되어 천호동은 마침내 강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천호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광진교의 준공식 때 곡교리에 살던 최 씨 노인이 뒷산 북망지(北望地)에 올라 “이곳에 집이 천호(千戶)는 들어설 것이다”라고 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오래된 마을이 많았던 동네로 불리게 되면서 1,000개의 문짝 집이라는 뜻이다.

강동구 상업의 중심지, 천호 사거리

천호동의 옛 중심지, 구천면로 천호 구(舊)사거리

경기도 하남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오랜 길목이던 구천면로의 교차점에 형성된 천호 구사거리는 천호동 상권의 옛 중심지이다. 구사거리는 6‧25전쟁 때 형성되었다. 수천 명의 피란민이 천호동에 유입되어 임시수용소가 들어섰고, 구천면사무소와 지서 등의 관공서가 이곳으로 이전해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천호동은 지난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될 당시에도 경제활동 인구 2,206명 중 제조업, 상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약 65%에 달하였다. 천호 구사거리에는 지난 1968년에 천호시장이 허가 개설된 이래 천호신시장, 동서울시장, 동부종합시장 등 지난 1980년대까지 총 8개의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이러한 시장은 천호동 주민을 위한 시장이라기보다는 경기도의 광주, 이천, 장호원 등지에 납품하기 위해 조성된 시장이었다.

지난 1960년대 ~ 1970년대에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시외버스터미널(현 대우베네시티 자리)과 ‘천호동 텍사스(천호동 423 일대)’라 불리는 집창촌이 형성되어 천호 구사거리는 강동의 상업 중심지로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천호동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은 지난 1988년 동서울종합터미널의 개장과 함께 문을 닫았고, 천호동 텍사스는 뉴타운 사업으로 작년 202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동구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

지난 1984년에는 강동구 최초의 백화점인 ‘유니버스백화점(현 이마트 천호점)’이 개장했다. 이후 목산백화점(1990년), 신세계백화점(1992년), 현대백화점(1997년)이 차례로 개장해 천호동은 백화점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1995년 지하철 5호선 개통과 천호 신(新)사거리 시대의 개막

지난 1995년에 지하철 5호선과 지난 1997년에 8호선의 개통으로 천호대교 남단의 천호대로에 환승역세권이 형성되었다. 이후 천호역 주변의 상권 팽창이 가속화되자 천호동 상권의 무게중심은 유흥‧위락시설, 전통시장이 위치한 천호 구사거리에서 현재의 천호 신사거리 쪽으로 이동하였다.

천호동 5대 특화거리: 문구․완구, 공구, 자전거, 먹거리, 로데오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의 후예, 천호 문구․완구 거리

천호 문구․완구 거리는 천호대로151길 일대에 약 230m에 걸쳐 있는 도매시장이다. 지난 1990년대 당시 전국 단위의 시장이었던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에서 파생되었다. 인근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고속도로와의 접근성이 좋아 최전성기에는 40여 개의 점포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온라인시장과 대형 프랜차이즈의 등장, 교육 당국의 무상 학습준비물 제공 등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현재 천호 문구․완구 거리에는 14개 업체가 운영 중이다.

서울 동남권 대규모 유통 공구단지, 천호 공구 거리

천호동 공구거리는 지난 1990년대 후반에 청계천 상가 정비에 따라 이전한 5~6개 업체로 시작하여 지난 2000년대 말까지 100여 개의 업체가 영업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후 규모가 점차 축소돼 현재 광진교 남단사거리와 구천면로가 교차하는 지점부터 천호지구대 방향으로 약 230m 거리를 따라 50여 개의 상점이 늘어서 있다.

서울 유일의 자전거 특화 거리

천호 자전거 거리는 지난 2013년부터 자전거 관련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 천호공원사거리부터 즈믄길 나들목까지 약 430m 거리를 따라 자전거 판매․정비뿐 아니라 관련 의류와 액세서리, 자전거 카페, 자전거 교육 관련 30여 개의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자전거 거리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와 자전거 거치대가 점포마다 비치되어 이용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있다.

강동구 젊은이들의 로데오거리

천호동 로데오거리는 지난 1990년대 중후반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오른 신세대를 겨낭해 지난 2004년에 탄생한 강동구의 쇼핑 특화거리다. 천호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호대로155길과 천호대로157길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해 길이 300m, 너비 12m의 규모를 지닌다. 현재 로데오거리 상인회에 등록된 점포는 150곳으로 이중 패션이 20%, 식음료․유흥시설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천호동 유흥가와 함께 성장한 먹자골목

먹자골목은 지난 1960년대 천호시장으로 오가는 유동 인구를 대상으로 시장 주변부에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족발․냉면․감자탕 골목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현재 먹자골목은 천호역 5번 출구 인근의 천호대로155길과 올림픽로70길이 중심이며 특정한 업종의 구분 없이 불규칙한 나열을 보인다.

단일 메뉴로는 천호시장 옆 구천면로23길 일대에 족발골목이 처음 형성되었다. 철원 등 이북 출신의 피란민들이 정착한 판자촌에서 지난 1965년에 ‘춘천집’이 문을 연 것이 시초다. 구천면로29길 일대에 위치한 냉면골목은 지난 1988년 ‘송월냉면’이 생긴 이래 10개까지 냉면집이 늘어나면서 골목이 형성되었다.

천호동,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museum.seoul.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입은 서울책방(store.seoul.go.kr)과 서울역사박물관 기념품점에서 가능하다.(가격 25,000원, 문의 02-739-7033)

시민들은 보고서 발간을 환영했고 그동안의 역사적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해서 가족들과 함께 읽어 보겠다고 전했다. 덧붙여 이런 자료들이 지속적으로 홍보되어서 과거의 모습들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 좋겠다고 전했다.

작성자 : ENB교육뉴스방송(총괄 편집차장 로이 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은평지국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로1길 10 401호
  • Fax : 070-4686-5555
  • 뉴욕지국 : 300 Northern Blvd. #301, Great Neck, NY 11021 USA
  • 종로지국 TEL : 010-3746-2078
  • Fax : 070-4686-555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효정, 김유정
  • 총괄보도국 : 총괄보도국장(국내) : 이자연
  • 명칭 : ENB교육뉴스방송
  • 제호 : ENB교육뉴스방송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96
  • 등록일 : 2017-10-24
  • 발행일 : 2017-10-24
  • 발행인 : 배미키
  • 편집인 : 김효정
  • 한국 총괄 대표 : 이자연
  • 해외 총괄 대표 : Mickey Bae
  • ENB교육뉴스방송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인터넷 위원회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 Copyright © 2024 ENB교육뉴스방송.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fo@enbnews.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