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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 배성태(국제특파원)
  • 2021.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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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서울역사박물관장(배현숙)은 작년 2020년 장위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보고서를 지난 2021년 5월 발간하였다.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서울의 특징적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기록하고 있다.

성북구 장위동은 해방 이후 지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다양한 주택 형태가 공존하며 독특한 주거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동북쪽 외곽 지역의 평범한 동네가 경험한 사회적·공간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서울에서 지난 60여 년간 시행된 다양한 택지개발사업의 전개를 장위동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한양의 동북쪽 끝 마을 장위동

서울의 동쪽 경계 장위동

장위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의 동북쪽 끝자락에 있던 농촌마을이었다. 조선시대 장위동 주변에는 공무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주요 길목에 설치했던 송계원(松溪院)과 중랑천을 건너 송계원·동구릉으로 향하는 다리인 송계교(松溪橋)가 있었다. 당시 송계교는 한성부와 한성부 동쪽을 구분하는 지점으로 장위리는 서울의 동쪽 경계로 인식되었다.

장위산인(獐位山人) 윤용구와 그 일가

조선 말기 장위동의 중요한 인물로 윤용구(尹用求, 1853년~1939년)가 있다. 윤용구는 지난 1867년 이전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년~1844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작은아버지이자 덕온공주의 부군 윤의선(尹宜善, 1823년~1887년)의 양자가 되었다.

윤용구는 지난 1939년 사망할 때까지 장위동에 거주하며 위세를 떨쳤다. 윤용구의 집 문밖에서는 관직의 고하에 따라 말에서 내려야만 했다. 또, 장위동에 사람을 잡으러 왔을 때나 죄인이 장위동으로 숨어들었을 때 윤용구의 허락 없이는 체포할 수 없었다. 지난 1912년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현재의 장위1·2동은 대부분 윤용구 가문의 소유였으며, 장위3동은 전주 최씨와 청주 한씨의 집성촌이었다.

장위리의 마을 규칙, 장위리존안(長位里存案)

장위리존안은 장위동의 마을 규약을 담은 문서이다. 지난 1905년(광무 9)에 시작된 이 규칙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난 1950년까지 마을에서 철저하게 지켜졌다. 장위리존안은 상존위(上尊位)로 마을의 가장 어른이었던 윤용구의 글씨로 작성되었다. 이 문서는 마을 이장들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위리 존안에 따라 장위동에서는 이장이 상권을 장악하고,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해 땅문서를 발행하고, 경우에 따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주택단지 개발과 장위동의 도시화

경춘선 부설, 장위동 개발의 신호탄

장위동은 지난 193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우이천과 주변 물길, 그리고 물길을 따라 저지대에 자연촌락이 형성된 성밖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난 1930년대 중반 경춘선의 부설이 결정되고, 지난 1938년 경춘철도주식회사는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정지사업을 시작하고 주택지 개발을 본격화하였다. 그러나 경춘철도주식회사의 개발 사업은 본격적인 주택지 개발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장위동이 주택지구로 개발된 것은 지난 1958년 이후이다.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 재건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6·25전쟁 이후 대한주택영단에서는 경춘철도주식회사의 소유 부지 및 그 인근에 재건주택과 부흥주택(1958년), 국민주택(1962년, 1964년)을 대규모로 건설하였다. 이로써 장위동의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지난 1958년~1964년 사이 대한주택공사의 세 가지 유형의 주택 사업이 인접하여 연달아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장위동 주택지들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958년 경춘철도주식회사 소유 부지였던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정부가 공급한 부흥주택 171세대, 재건주택 200세대의 총 371세대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전체 건축면적은 4,617.5평으로 재건주택은 2호 연립, 부흥주택은 4호 연립 복층 형식으로 지어졌다. 현재 재건주택은 10여 호 남아 있으나 2호 연립의 온전한 형태를 갖춘 재건주택은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부흥주택은 처음 지어진 46동 중 36동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재건주택을 관통하는 남북도로에는 장위골목시장이 들어섰고 시장에 면한 주택은 상가로 바뀌었다.

장위동 주택단지의 개별 주택 규모는 부흥주택 25㎡ 이하, 재건주택 30㎡ 내외인 반면 국민주택은 50㎡ 전후로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건축물 형태도 부흥주택과 재건주택은 연립 형태였으나, 국민주택은 모두 독립된 단독주택으로 사대문 안에서 온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이었다.

별들의 고향, 동방주택단지

민간의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과 신흥부촌의 형성

장위1동에는 동방고개로 부르는 경사지가 있다. 그리고 이 동방고개에 위치한 주택들을 동방주택이라 부른다. 동방주택이 세워진 일대는 윤용구 일가 소유의 토지였다.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은 지난 1960년 장위동 산3-1번지 일대를 윤용구의 후손에게 매입하였고, 지난 1962년 대대적인 택지조성사업을 시작하여 신흥 부촌이 형성되었다.

장위동 동방주택은 동방생명이 진행한 가장 규모가 큰 택지조성사업이었다. 이렇게 조성된 필지는 분양공고를 통해 분양되었다. 개인이나 주택건설업자에게 필지를 매각한 후 필지를 구매한 사람들이 각자 주택을 짓는 방식이었다.

동방주택단지에 살았던 57개의 별

장위동의 동방주택은 100평이 넘는 필지에 잔디가 깔린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호화로운 고급 주택지였다. 태릉 육군사관학교와 인접해 군장성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이 다수 거주하였으나 강남 개발 이후 부자들이 대거 장위동을 빠져나갔다.

서울 동북부 대표 노후 주거지에서 뉴타운으로의 변신

그러나 지난 1980년대 후반 이후 장위동 지역의 도시발전은 정체되었고 저지대 단독주택지 대부분이 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전환되어 서민주거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장위동은 서울 동북부의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로서 지난 2005년 뉴타운 개발사업 대상지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서울꿈의숲에 공주릉이?

공주릉에 생긴 강북 최대 놀이공원 드림랜드

북서울꿈의숲에 위치한 창녕위궁 재사(昌寧尉宮 齋舍,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집채)는 조선 제23대 순조의 딸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사(齋舍)이다. 때문에 장위동 사람들은 북서울꿈의숲을 ‘공주릉’이라고 부른다.

북서울꿈의숲이 생기기 전 이곳은 강북 지역 최대 놀이공원이었던 ‘드림랜드’가 있었다. 드림랜드는 지난 1985년 11월에 착공하여 지난 1987년 4월 27일에 개장하였으나 지난 2008년 폐장하였다.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http://museum.seoul.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도서 구입은 서울책방(https://store.seoul.go.kr)에서 가능하다.(가격 25,000원. 문의 02-739-7033)

시민들은 1970년대 서울의 뉴타운이 장위동이라는 소식에 놀라움을 표했고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가 발간되었다고 하니 홈페이지를 통해 책을 보겠다고 전했다.

작성자 : ENB교육뉴스방송(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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